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황해도 안악(安岳) 사람이다.
일찍 부모와 함께 중국땅으로 이주하여 유년시절부터 중국에서 보냈다.
1924년 8월 15일부터는 상해 프랑스조계(租界)에 있는 김 구(金九)의 집에서 기숙하면서 임시정부 산하 인성(仁成)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때부터 김윤경은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직접 간접적으로 고취하여 독립운동에 전념할 것을 다짐케 되었다.
이에 1930년에는 상해에서 항일운동을 위해 의기가 투합한 젊은 여성들을 모아 여자청년동맹(女子靑年同盟)을 조직하여 그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윤경은 여성항일운동의 선봉에 서서 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독립운동을 위한 정보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다. 즉 여자청년동맹에서는 일본 관헌들로부터 얻는 정보를 임시정부에 전달한다거나 혹은 임시정부에서 대일(對日) 독립항쟁을 위해 일본 관헌을 교란시킬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여성단체인 동 여자청년동맹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1933년 상해에서 남경(南京)으로 거처를 옮긴 김윤경은 이곳에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의 여성 당원으로서 독립운동의 일선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정책은 만주(滿洲)를 강점하고 만주국(滿洲國)을 건립하여 노구교(蘆溝橋)사건을 조작하고, 1937년 마침내 중 일전쟁을 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과 중국의 남경이 함락 당하여 이곳에 기지를 둔 각종 항일단체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김윤경도 곧 동지들과 중경(重慶) 방향으로 남경을 탈출하였다.
중경에 도착 후 계속 임시정부 및 한국독립당 산하에서 부인회 등에 참여하여 항일 전선에서 활동하다가 이국땅에서 영면하였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05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2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