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북 영덕(盈德)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병곡면(柄谷面) 병곡동(柄谷洞)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병곡의 만세운동은 3월 18일 영해시위에 참가했던 시위군중이 병곡으로 시위 장소를 옮기면서 시작되었다. 권유동과 남조홍(南朝洪)은 영해시위에 참여했던 2백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오후 2시경 영해 장터를 출발하여 병곡주재소로 향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해시위에 참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그 수가 4백여 명으로 늘어났다. 드디어 시위군중이 병곡주재소 앞에 이르러 만세운동을 벌이자, 경찰들이 이를 제지하였다. 그러자 권유동을 비롯한 시위군중들은 돌ㆍ곤봉ㆍ낫 등을 들고 주재소로 밀고 들어가 기물과 서류 등을 파기하고 벽까지 파괴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 3명은 총을 들고 백석동(白石洞)으로 달아났고, 시위대들은 병곡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사무소를 파괴하였다. 한편 달아났던 일본 경찰은 평해 헌병분견소로부터 지원 받은 3명의 헌병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이때 시위군중을 지휘하던 정규하는 일본 경찰을 향해 "조선인 순사를 전부 데리고 오라"고 호통쳤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도리어 총을 겨누어 발사하려 하였다. 그래서 정규하는 시위군중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해산을 종용했고, 시위군중들은 오후 7시 반 무렵에 해산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3개월 여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三ㆍ一義擧塔竣工式(1983) 10面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1919. 7. 11)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卷 40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32ㆍ43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