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3월 중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양봉근(梁奉根)이 구포로 내려와 구포면 서기 임봉래(林鳳來)에게 서울과 평양의 3.1만세운동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독립선언서」를 보여주면서 구포에서도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3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임봉래·윤경(尹涇)·유기호(柳基護)를 중심으로 3월 29일 구포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3월 29일 정오 권용학은 박덕홍(朴德弘)·손진태(孫晉泰) 등과 함께 구포시장에서 장꾼 1,000여 명과 ‘독립만세’를 외치며 연호했다.
박덕홍은 큰 태극기를 흔들면서, 또 안화중은 시위를 위해 시장의 폐문을 호소하면서 장꾼을 지휘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 군경에 의해 12명의 주도자가 체포되어 주재소에 구금되자 여기에 격분한 시위군중이 주도자의 석방을 요구하며 주먹과 곤봉으로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투석하면서 격렬한 항쟁을 벌였다. 삽시간에 주재소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 만세시위로 43명의 주도자가 검거되었다.
권용학은 3월 39일 구포시장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4월, 2년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미결구류(未決拘留) 149일 만인 8월 26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예심종결결정서(豫審終結決定書)(부산지방법원:1919. 7. 16)
- 명적표(名籍表)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56~25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