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남 광주(光州)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두 차례 옥고를 치렀다.
광주에서는 3월 10일 광주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거사 당일 오후 3시경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둑 소시장에 1,000여 명의 시위대가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양림동(楊林洞) 방면에서는 기독교인,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光州川)을 따라 내려왔고 서문거리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오고 농업학교 학생들과 군중은 북문 방면에서 모여들었다. 또 지산면(芝山面) 쪽에서는 수백 명의 농민이 참여하였다. 일곡리(日谷里)의 유지 이주상 등이 일곡·생룡(生龍) 일대에 많이 살고 있는 이씨·범씨·박씨 등 인원을 동원한 결과였다.
이렇게 모여드는 군중을 상대로 숭일·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시위군중은 태극기를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출발하였다. 이들은 서문통(西門通)을 지나 우편국을 돌아 본정통(本町通)을 행진하는 등 광주 시내의 중요한 거리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주상은 아들인 숭일학교 학생 이창호(李昌鎬)와 함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이주상은 1919년 6월경부터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전라남도의 기독교인들이 주도하여 조직한 국민회(國民會)에 가입하여 회원 모집과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1920년 6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東亞日報(1922. 6. 19)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555~562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0. 6. 21)
- 秘密結社 國民會員 募集者와 不穩文書 配布者 檢擧에 關한 件(1920. 1. 22)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5)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19. 4. 30)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20. 4. 17)
- 犯罪人名簿(光州 北區)
- 每日申報(1919. 4. 17, 5.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