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전남 무안(務安) 출신이다.
1906년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이 정산(定山)에서 거의하였을 때 4백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호응하였다.
그후 부여(扶餘) 군청을 습격하여 무기를 탈취하고 휘하 의병들을 무장시켜 각지에서 의병운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9월부터 10월 30일 사이에 일제가 전개한 이른바 '南韓大討伐' 작전 때 의병장 및 의병 130명이 체포 및 순국하였다.
이는 일제가 한일합방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마지막으로 의병 대소탕전을 전개한 것으로 일군의 포악무도한 야만성이 그대로 드러난 작전이었다.
이때 김익수도 체포되었는데 그 즈음 그의 부하는 50여 명에 이르렀다. 그 후 3년간 서대문 형무소와 공주 형무소 등에서 옥고를 치른 후 숨어살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무안향교 경통
- 광주향교 경통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10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5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