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郡北面)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이보다 하루 앞선 3월 19일 함안읍 만세운동의 후속으로 연결되면서 일어났다. 광무황제(光武皇帝) 인산(因山) 참례 차 상경했다가 만세현장을 보고 돌아온 유지인사들에 의해 추진된 함안읍내의 만세운동은 계획때부터 군북면의 만세운동과 연대를 이루며 추진되었다. 즉 3월 19일 함안읍내의 장날을 기하여 먼저 만세시위를 일으킨 다음 그 여세를 몰아 3월 20일 군북 장날에 만세시위를 이어 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성근 등은 군북면의 만세운동을 추진하면서 신창학교(新昌學校)의 교사 및 학생들과 힘을 합쳐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하여 거사 직전까지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함안읍내의 만세시위를 기다렸다. 드디어 3월 19일 함안읍내에서는 예정대로 만세시위가 거행되었고, 1천여 명의 시위군중은 일본군의 탄압으로 해산하고 말았는데, 이때 함안읍 의거에 참가했던 인사들이 군북으로 넘어 오면서 군북에서도 만세시위의 불을 당기게 되었다.
거사 당일인 3월 20일 오전 9시, 신창학교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거행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하여 오후 1시에 군북 시장에 모인 3,000여 명 군중들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조성근은 준비해 간 태극기를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고,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만세시위를 주도해갔다.
그런데 시위 도중 시위대는 이를 저지하는 일군경과 육탄전을 벌이다가 21명의 시위 군중이 총탄을 맞고 순국하고 말았으며 이때 조성근도 일군경이 쏜 총탄에 의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靑年(新韓靑年黨, 1920. 3. 1) 創刊號 40面
- 朴殷植全書 上卷 570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272面
-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國家報勳處) 第7輯 74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158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