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경기도(京畿道) 수원(水原) 사람으로 3월 1일과 5일에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1919년 중앙학교 2학년 때 이춘학(李春鶴)으로부터 만세운동 참여를 권유받았다. 이에 3월 1일 오후 2시 파고다공원에 가서 장기욱(張基郁)·김응관(金應寬)·한호석(韓戶石) 등 중앙학교 학생 14명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어 3월 4일 전문학교와 중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제2회 학생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했다. 다음날인 3월 5일 아침 하숙집을 나와 세브란스병원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김원벽·강기덕 등이 주도하는 학생 독립만세운동의 군중과 만났다. 군중들과 함께 만세를 외치며 조선은행까지 갔을 때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19년 8월 30일 이른바 ‘출판법 및 보안법 위반’으로 예심을 거쳐 재판에 회부되었다.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형을 선고받고 1920년 2월 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문(豫審終決決定文)(경성지방법원 : 1919. 8. 30)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19. 11. 6)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0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186면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4) 제17권 4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