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평남 강서군(江西郡) 반석면(班石面) 상사리(上四里) 사천시장(沙川市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다 붙잡혀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사천시장의 만세운동은 대동군 금제면(金祭面) 원장리(院場里)에서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던 군중들이 사천시장(일명 모락장) 만세운동을 준비하다 주재소에 잡혀간 반석교회 장로 최능현(崔能賢)과 모락장교회 목사 송현근(宋賢根)을 구출하기로 하면서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4일 오후 1시경 시위 군중은 사천시장으로 행진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반석면장 김종화(金宗化)가 일본 헌병에게 밀고하는 바람에 일본 헌병들은 사천시장 입구에서 매복하고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지도부는 군중들과 논의 끝에 애초 계획대로 실행할 것을 결정하였다. 시위 행렬이 시장 입구에 도착하자, 일본 헌병들은 총을 난사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돌을 던지며 거세게 저항하자,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헌병주재소장 사토(佐藤)와 헌병보조원은 달아났다. 시위대는 이들을 추격하여 붙잡아 처단하는 한편, 갇혀있던 동지들을 전원 구출하였으나 현경묵(玄景默) 등 14명이 사망하였고, 4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한편, 사천시장 시위 소식을 접한 평양헌병대 본부는 일본 군경을 출동시켜 400여 명을 잡아들여 연일 고문을 가하였다.
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이혜준은 체포되어 1919년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살인,방화,소요,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받고 11여 년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9년 7월 10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12. 6)
- 東亞日報(1929. 7. 12)
- 朝鮮日報(1929. 7. 1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09~413면
- 中外日報(1929. 7. 1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789~79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