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전남 광주(光州) 숭일학교(崇一學校)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광주에서는 3월 10일 광주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거사 당일 오후 3시경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둑 소시장에 1,0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양림동(楊林洞) 방면에서는 기독교인,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광주천(光州川)을 따라 내려왔고 서문거리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오고 농업학교 학생들과 군중은 북문 방면에서 모여들었다. 또 지산면(芝山面) 쪽에서는 수백 명의 농민이 참여하였다. 이창호 아버지인 일곡리(日谷里)의 유지 이주상(李周庠)이 일곡·생룡(生龍) 일대의 농민들을 동원한 결과였다.
이렇게 모여드는 군중을 상대로 숭일·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태극기를 나누어 주었고, 시위대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출발하였다. 이들은 서문통(西門通)을 지나 우편국을 돌아 본정통(本町通)을 행진하는 등 광주 시내의 중요한 거리를 누비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숭일학교 학생 이창호는 그의 아버지 이주상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19년 4월 13일 광주지방법원을 거쳐 1919년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이 확정되기까지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8. 13)
- 判決文(光州地方法院:1919. 4. 1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556~558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