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22일 아침 9시 반경 7~8백 명의 군중이 서울 봉래동(蓬來洞)에서 ‘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아현고개까지 행진했다. 23일 저녁부터 심야까지 시내 여러 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창규는 이날 밤 연건동(蓮建洞) 공업전습소(工業傳習所) 부근에서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다 체포되었다. 5월 8일 1심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그는 상고했으며, 7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소요(騷擾)’ 혐의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1919. 5. 11)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1995) 제27권 44~4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