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부산(釜山)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때 미곡 소매업에 종사하던 중 일신여학교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부산에서 만세운동은 3월 2, 3일경 독립선언서가 기독교계열을 통해 전해지는 것과 함께 경성학생단(京城學生團)의 이름으로 부산상업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가 전달되면서, 일신여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신호탄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3월 11일 저녁 9시를 기해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때 이들은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살포하면서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행진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신여학교는 11명의 학생들이 붙잡히고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휴교하였으나, 나머지 학생들에 의해 제2의 만세시위가 계획되어져 갔다.
그리하여 3월 31일과 4월 3일, 4월 8·9·10일에 걸쳐 계속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때 박두천은 제2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그는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인하여 1923년 6월 19일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매일신보(1919. 4. 7, 4. 19)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88면
- 명적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