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1운동 당시 평양에서
3.
4. 그 후 계속하여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1913년 김경희(金敬喜)·황애덕(黃愛德) 등과 함께 여성들의 항일구국의식 함양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송죽회(松竹會)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이후 중년 여성(松兄弟)과 젊은 여성(竹兄弟)을 고루 포섭하여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회비와 자수 등을 통해 군자금을 모금하여 국외 독립운동기지에 전달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평양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광성(光成)·숭의(崇義)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집을 모의장소로 제공하고 항일격문·태극기 등의 제작에 필요한 경비도 부담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혀 3주일에 걸친 가혹한 고문을 당하였다. 1919년 11월 감리파와 장로파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가 통합하여 확대·조직된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의 회장에 선임되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동회는 재무부·교통부·적십자부의 부서를 갖추고 평양을 비롯한 서북지역의 부인회 조직을 동회의 지회조직으로 흡수하였으며 본부는 지회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었다. 동회는 이후 항일독립사상의 고취와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2천 백여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전달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는 일경에 붙잡혀 1921년 2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기려수필 29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460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364·37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5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2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2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63·86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33·437·96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