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6일 전라남도 광주군 광주면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해당 지역의 지식인들은 독립만세운동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 김복현(金福鉉) 등은 ‘선언서’ 배포와 숭일학교(崇一學校) 등 학생들을 포섭해 갔다.
3월 10일 아침 김판철은 숭일학교 교사인 최병준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았다. 김판철 등 6명은 이를 다시 서문통(西門通) 등에 뿌렸다. 장터에 모였던 군중이 광주 중심 시가를 돌며 행진할 때 큰 깃발을 흔들면서 만세시위를 이끌었다.
김판철은 이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했지만, 8월 13일 징역 6월을 다시 선고 받았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20년 2월 14일 출옥했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8. 1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8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