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19년 3월 평남 강서군(江西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태형(笞刑)을 받았다.
1919년 3월 초 강서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강서군의 만세시위는 3월 2일 초리면(草里面)에서 시작되었다. 이날 초리면 이로리(伊老里)의 기독교회 소속 보명학교(寶明學校) 교사와 학생,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이어 3월 3일 강서 읍내 장날에도 대규모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의 시위는 기독교인과 천도교인이 함께 준비하였다. 오전 10시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삼창을 시작으로 군중이 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하자, 참여자가 4,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일제 헌병과 경찰 등의 무차별 발포로 현장에서 9명이 순국하였다. 김태열도 3월 초 강서군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8일 평양지방법원(平壤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每日申報(1919. 4. 27)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14집 97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05~40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