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30권(2025년 발간)
사업상 전라남도 광주(光州)에 갔다가 독립만세운동에 관한 소식을 들은 정기환은 3월 13일 담양군으로 돌아와 국한종(鞠漢鍾)・정경인(鄭璟仁)・임민호(林玟鎬)에게 시위 상황을 알렸다. 3월 14일 박용성(朴容成)까지 규합한 후 장날을 이용해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모두 당시 관청에서 일하는 관계로 임기정(林基正)에게 만세시위에 관한 일을 일임했다.
3월 16일 임기정에게 만세시위 계획을 들은 보통학교 학생 김길호(金吉浩)와 김흥섭(金興燮)은 동급생들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였다. 김탑쇠는 이때 장삼채(張三采)와 함께 동참하기로 결정하고, 3월 17일 본인 집에서 이들과 함께 백지에 붉은 염료를 사용해 태극기를 제작했다. 3월 18일 오전 5시경 장삼채가 당일 만세시위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한 약 150개의 태극기를 담양시장 십자로 다리 아래 은닉했으나 발각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1919년 5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으나, 공소하여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부는 2024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 1919. 5. 8)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 : 1919. 6. 17)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566~56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제5집 1524~152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