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북 대구(大邱) 덕산정(德山町)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9일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들의 주도로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다 이를 탐지한 일본 군경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에 김치운 등 유지들은 대구고보(大邱高普) 학생 박남준(朴南俊) 등과 다음날 덕산정시장에서 다시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고 태극기 제작 등 준비를 마쳤다. 10일 오후 4시 30분경 김재병을 비롯한 이덕주,최동쇠(崔東釗) 등이 태극기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뒤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외쳤다. 이를 신호로 김치운도 군중들과 함께 호응하여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감시하는 일본 군경들로 시위행진을 하지 못한 채 주동자와 시위군중 65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붙잡힌 김치운은 1919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355면
- 刑事事件簿
- 名籍表
- 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264~127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