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장연군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3월 9일 읍내 읍후리(邑後里) 여현구(呂鉉九)의 집에서 강원보(姜元寶)·박영서(朴永瑞) 등이 모여 비밀회의를 열고 3월 11일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따라서 이들은 태극기를 제작하는 한편 장연군 각지에 계획을 전파하였다. 그리고 거사에 앞서 독립선언서를 장연읍 남문 성벽에 붙여서 독립선언의 사실을 미리 공표하였다. 이에 따라 시위 당일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는 가운데, 오후 1시 경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200여명의 시위대가 시장으로 모였다.
김치명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였다. 경찰이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체포하자, 시위대는 경찰서로 몰려가서 이들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총으로 위협하고 마침내 발포하게 되니, 무모한 희생을 피하기 위해 해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위 후 체포된 김치명은 해주지방법원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그는 “조선 민족으로서 조선 국기를 들고 조선의 독립만세를 부른 것은 천심(天心)으로 되는 일이다. 천심에 의한 만세운동이 무슨 죄가 되는가?”라고 상고 항쟁하였으나, 1919년 5월 2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5. 24)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313~315면
- 每日申報(1919. 4. 20)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736~73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