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평남 용강(龍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6일 김정식(金正植)이 김태웅(金泰熊) 등과 용반리(龍磻里) 서당에서 회합하고 평양부의 예에 따라 동리 부근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고, 시위에 사용할 소형 태극기 수십 개를 제작하여 학생 십여 명에게 나누어주고 동소에서 5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용반 2리, 궁산리(弓山里), 일병리(日屛里)를 거치면서 더욱 규모가 커진 시위대는 해운면 온정리(溫井里)에서는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재소를 파괴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취려는 3월 6일 해운면 온정리 장터의 이승호(李承浩)의 집에서 일하고 있던 중, 해운면 용반리 주민 등이 장터에서 시위를 전개하는 것을 목격하고 이에 동참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활동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취려는 진남포지청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고, 1919년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 기각되어 그 형이 확정되었다. 김취려는 1920년 4월 26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818~821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3권 90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7)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0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