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8일 의성읍 장터에서 박락현(朴洛鉉)·윤영주(尹營柱)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의성읍의 만세시위는 교회 영수인 박락현과 대구성경학교 학생 윤영주가 3월 8일 대구에서의 만세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온 뒤 추진되었다. 이 두사람은 3월 12일 대리동(大里洞) 교회인사들에게 대구 만세운동의 정황을 설명하고, 의성에서도 3월 18일 의성읍 장날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 때 김천특은 만세시위 계획에 참가하였으며, 이들은 거사 당일 배포할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는 한편 동지 규합에 힘을 쏟았다. 그리하여 이 날의 거사에는 의성보통학교 학생들을 동원하여 읍내 도동동(道東洞) 공자묘(孔子廟) 뒷산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뒤 장터로 들어가기로 계획을 세워 놓았다.
그런데 거사 전날인 3월 17일에 일경은 만세운동의 계획을 사전에 탐지하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는 한편 중심인물의 색출에 여념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김천특과 중심인물들은 3월 18일에 장터로 잠입하여 거사를 강행하였다. 그리하여 장터에 모인 수천 군중들이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벌여 나갔다.
이 때 김천특은 선봉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1919년 4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5월 2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31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84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