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창섭은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양성면과 원곡면의 합동만세시위는 대규모였다. 원래 양성은 별개 군으로 있다가 안성군으로 합친 곳인 만큼 양성읍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면사무소는 둘로 갈라졌지만 주재소는 안성읍에만 있었다.
1919년 4월 1일 원곡면민들은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여 양성읍으로 행진했다. 한편 양성면에서도 마침 이때 만세시위 행진을 벌여 읍내를 돌며 면사무소·주재소 등을 에워싸고 만세를 부른 다음 서서히 되돌아 나오는 도중이었다. 이들은 원곡면 1,000여 명의 행렬과 합세, 2,000여 명의 대 시위행렬이 되었다. 시위대는 태극기를 선두에 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드높이 부르며 횃불과 등을 흔들며 주재소로 향하여 행진을 하였다. 양성주재소에 도착하자 군중은 주재소에 불을 질렀고 이때 김창섭은 돌을 던져 주재소의 유리창을 부쉈다. 시위행렬은 양성우편소로 향하여 투석하고 방화하였다. 김창섭 역시 사무실 안에 들어가 서류와 도구 등을 사무소 앞마당에 끄집어내었다. 군중은 또 양성면사무소로 들어가 호적원부를 꺼내어 소각하고 기물을 파괴한 후, 뒷산에 올라가 만세를 부르고 해산하였다. 원곡면으로 돌아가던 시위 군중은 면사무소에 가서 면장을 포박하고 사무소를 불질렀다.
시위 후 체포된 김창섭은 소위 보안법 위반, 건조물 손괴, 기물 파괴, 공문서 훼기, 주거 침입, 강도, 소요, 전화법 위반 등으로 징역 2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20. 8. 10)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6) 제27집 16~1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425, 429~430, 432, 433~441, 452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1995) 제23집 218~220면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21. 1. 22)
- 每日申報(1919. 8. 10)
- 東亞日報(1920. 3. 22)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高等法院:1920. 3.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