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919년 3월 초 면사무소 직원 이중원(李中元)·이광호(李洸鎬), 교사 이시교(李時敎) 등은 3.1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예안 장날인 3월 17일을 시위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다수 제작하였다. 각 마을에 연락하여 사람을 모았다. 예안공립보통학교(禮安公立普通學校) 학생들도 이에 가담하였다. 장날인 3월 17일 오후 3시 반 무렵 시장에 주민과 학생 등 약 1,500명이 모였다. 예안우편국(禮安郵便局), 예안경찰관주재소(禮安警察官駐在所) 부근에서 이광호와 이시교 등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모여 있던 군중이 호응하였다. 시위군중은 태극기를 흔들고 시장을 행진하였다. 경찰과 군인이 출동해 이광호 등 20여 명을 연행하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오후 6시 반경 다시 모인 시위군중은 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만세를 부르고 구금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나아가 주재소 유리창을 파괴하고 주재소 안으로 진입하여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김창락은 1919년 5월 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고등법원:1919. 7. 12)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