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평북 의주군(義州郡)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2월 28일 의주군 의주면(義州面) 읍내 소재 양실학교(養實學校)에서 안석응(安碩應) 등이 모여 3월 1일 읍내 예수교회당 부근 공터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런데 28일 밤까지 독립선언서가 도착하지 않자 우리 조선민족은 정의와 자유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신국가를 건설하고자 한다.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으면 조선인은 최후의 1인까지 자유행동을 지속하여 일본에 대해 영원히 혈전을 해야 할 것을 선언한다는 요지의 가선언서(假宣言書)를 300부 등사하여 준비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30분이 되자 교회당 부근 공터에 약 700~800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고, 김창건 등은 회장에 태극기 두 개를 세우고 종이로 만든 작은 국기 백 수십 매를 군중에 배부하였다. 때마침 서울로부터 인쇄한 독립선언서가 도착하자 선언서를 낭독하고 군중에 배포하였으며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김창건 등은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를 전개하였다. 김창건은 체포되어 1919년 8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8. 1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876~87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