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강원도 양양(襄陽) 사람이다.
1919년 4월 5일, 6일 양일동안 강현면(降峴面) 회룡리(回龍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4월 5일 강현면과 도천면(道川面) 합동으로 전개되었다. 강현면은 물치장터에서 도천면은 경찰주재소가 있는 대포리에서 운동을 펴기로 하였던 것이다. 이들 면의 책임자는 각각 장세환(張世煥)과 김영경(金英經)이었다. 이들은 각 마을 마다 책임자를 두어 각기 태극기를 만들도록 하였다. 특히 강현면은 넓고 담당지역 분할이 철저하였다. 이 지역은 물치리·침교리·적은리·주청리 등으로 분할되었는데, 김진선은 강현면의 침교리지역을 담당하였다.
4월 5일 10시경, 물치장터로 모인 강현면민들은 시장 쌀가게 앞에서 독립선언식을 가졌다. 그리고 옥양목으로 만든 큰 태극기를 앞세우고, 1,000여 명의 군중은 손에손에 작은 태극기를 들고 장터에 모여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것이다.
이들은 독립선언식을 끝마치고 대포리 주재소로 행진하여 도천면민과 합세하였다. 이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그 주변에서 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계속할 때, 주재소 수석 석전희삼랑(石田喜三郞)이 군중에게 허리를 굽혀 빌었다. 그러자 군중들은 4월 6일 양양읍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속 펼치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4월 6일 1,200∼1,300명 정도가 되는 군중이 다시 모여 만세시위를 펼치기 위해 양양읍내로 향했다. 그런데 연창(連昌)에 다다랐을 때, 뜻하지 않게 일본 군대와 맞서게 되었다.
그러나 군중은 제지하는 군대를 밀고 읍내로 들어가 경찰서로 몰려갔다. 때마침 손양면(巽陽面)의 시위군중 300여 명이 합세하여 그 기세는 더욱 등등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찰서장이 저자세로 나오자, 결국 시위군중들은 만세만 부르고 해산하였다.
후에 일경(日警)은 시위 가담자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도 붙잡혀 1919년 4월 24일 함흥지방법원 강릉지청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616∼620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977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