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함남 고원군(高原郡) 군내면(郡內面) 석연리(石淵里) 덕지(德池)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기독교 장로교인 유관흥(劉寬興)은 천도교인 김명국(金明國)을 만나 만세 시위를 추진하기로 협의하였다. 이들은 3월 19일 읍내 하시장(下市場)에서 거사하기로 하였다. 이에 유관흥이 김중생을 찾아가 거사계획을 전하자, 김중생은 찬성하였다. 3월 18일 김중생은 유관흥 등과 함께 태극기 300매를 만들어 준비하였다. 19일 유관흥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하시장에서 400~500명의 군중을 모아 놓고 독립만세를 부른 다음 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대열은 태극기를 흔들며 석연리 덕지시장으로 향하였다. 이들이 덕지시장에 도착하였을 때, 출동한 일본 군경들의 진압으로 군중은 해산되고 현장에서 3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된 김중생은 원산형무소에서 약 7개월간 옥고를 치르고 1919년 11월 12일 출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5. 12)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681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1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985~98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