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19년 3월 23일 임실군 둔남면(屯南面) 오수리(獒樹里) 장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곳에서는 이미 3월 10일 공립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해 임실군내에서 제일 먼저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기송(李起松)·오병용(吳秉鎔)·이만의(李萬儀) 등에 의해 만세운동이 다시 계획되었다. 이들은 천도교(天道敎)·예수교인들과 연락하여 장날인 3월 23일 오후 2시에 대규모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준비하였던 것이다.
3월 23일 오후 2시 이기송은 장터에 모인 군중들 앞으로 나아가 독립운동의 당위성에 대한 연설을 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그러자 군중들도 따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이후 시위군중들이 계속 모여들어 그 수가 2천여 명이 되었다. 이들은 시장내의 일본인 상점을 완전히 파괴하고,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로 몰려가 투석(投石)하여 창문 등을 파괴하였다.
이때 김종창도 시위 대열에 참가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면사무소 및 주재소 등에 돌을 던져 건물을 파괴하였다.
김종창은 이날의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붙잡혀 1919년 7월 31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全州支廳, 1919. 7.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