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1919년 3월 전라남도 광주농업학교 재학생으로서 동지들과 광주농업학교와 숭일학교(崇一學校)를 오가며 학생들의 만세운동 계획과 전개 과정에 참여했다.
3월 8일 숭일학교에서 독립운동을 발기(發起)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확인하고자 정병소(丁炳沼) 등과 함께 숭일학교에 갔다. 별실에서 만세운동 전개에 대해 아직 확정하지 못했으나 결정되는 대로 알리겠다는 답변을 듣고 만세운동 전개시 함께 결행할 것을 합의하였다. 광주농업학교로 돌아와 기숙사에 기거하는 15~16명의 학생들과 협의하였다. 3월 9일 동지들과 다시 숭일학교에 가서 다음날 전개할 만세운동에 대해 회의를 하였다.
3월 10일 광주교(光州橋) 아래 강변에서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사방의 군중이 작은 장터에 모여 1,0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김정수는 같은 날 아침 최병준(崔丙俊)에게서 받은 「독립선언서」 약 140~150장을 같은 학년인 3년생들과 나누워 주었다. 곧이어 「독립선언서」 약 10장을 가지고 작은 장터에서 통행인들에게 배포했다. 아울러 수피아여학교(須比亞女學校) 학생들이 사전에 만든 깃발을 흔들고 군중과 함께 만세를 외치면서 중심 시가를 행진하였다.
김정수는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8월 13일 징역 1년을 다시 선고 받았다. 옥고를 치른 후 1920년 4월 27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8. 13)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9권 287~28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