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4월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기린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황해도 평산군에서는 1919년 3월 7일 평산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일본 헌병대의 무차별 총격으로 수 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1919년 3월 31일 금암면(金岩面) 한포리(汗浦里)와 인산면(麟山面) 기린리(麒麟里)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은 두 곳 모두 장날이었기 때문에 시위 군중이 600여 명이나 되었다. 기린면에서는 오후 1시 면서기 서홍균(徐洪均), 화가 김예식(金禮植) 등의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시위 군중이 기린장터를 행진하자 헌병의 총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919년 4월 1일 신봉균(申鳳均)ㆍ김용운(金龍雲)ㆍ조중선(趙仲善)ㆍ김경욱(金京旭)ㆍ노상돈(盧相頓)ㆍ이병권(李炳權) 등이 다시 독립만세를 이끌었다. 이날 김익현은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4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기린주재소로 가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였다. 이에 맞선 일제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김익현은 체포된 뒤 1919년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소요(騷擾), 상해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 : 1919. 9. 22)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607~611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24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