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9년 3월 10일 남문외시장(새장 또는 德山洞 시장) 장날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8일 대구 서문 장날에 대구고등보통학교·계성학교·신명여학교·성경학교 학생들이 일으켰다. 이후 항일저항의식이 고조된 상태에서 계성학교(啓聖學校)·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그곳 유지들의 계획아래 다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월 9일 오후 3시경, 계성학교 학생을 비롯한 150여 명의 학생들이 재차 의거를 단행하기 위해 달성공원(達城公園)으로 모여들다가, 3월 8일 시위 이후 삼엄해진 경계로, 일본군경에 탐지되어 강제 해산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들 학생들은 모의 계획을 계속했고, 한약상을 하던 김윤덕 등 지방유지들의 뜻을 모아, 3월 10일 남문외시장 장날에 재차 거사하기로 약정하였다. 그래서 이들은 태극기를 만드는 등 모든 준비를 서둘렀다.
3월 10일 오후, 학생들은 삼엄한 경계를 뚫고 태극기를 몰래 시장으로 운반하였다. 4시 30분 경, 시장에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학생들은 '대한 독립만세'라 대서특필한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때 장터에 모인 수백 명의 군중들도 일제히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그러나 일군경의 저지로 행진은 하지 못한 채, 김윤덕을 비롯한 주도자들만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72面
- 判決文(1919. 5. 31.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267·1269面
- 判決文(1919. 4. 18. 大邱地方法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