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3월 18일 밤 차상명(車相明) 등의 주도로 이근우(李根雨)·김해관(金海菅)·김재호(金在浩)·박재삼(朴在森) 등 범어사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 40명은 동래읍 서문 부근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들은 동래 시장을 거쳐 남문까지 행진하고 해산하였다. 이어 이튿날 19일 오후 5시 무렵에도 수십 명의 학생들이 동래시장 남문부근에서 동래경찰서 앞까지 행진하며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명정학교 재학 중이던 김영식은 3월 18~19일 동래시장 부근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고초를 겪었다. 1919년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19. 5. 20)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3.1운동시(運動時) 피살자(被殺者) 명부(국가기록원 소장, 1953) 800면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제20권 255~25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