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동래(東萊) 사람이다. 1919년 3월 13일 동래읍(東萊邑) 장날에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에서의 만세운동은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학생대표가 3월 7일 부산상업학교(釜山商業學校) 학생대표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으면서 계획되었다.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 등 학생대표들은 3월 10일 동래고보 선배로서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면서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곽상훈이 수학교사 이환(李環)과 만나 만세운동에 대하여 상의하고 동래고보 학생의거의 배후 참모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그들은 동래읍 장날인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와 수백 개의 태극기, 그리고 광무황제(光武皇帝)의 독살을 폭로하는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당시 동래고보에 재학중이던 김성조는 3월 13일 오후 2시, 같은 학교 학생들과 함께 동래군청 앞 광장에 모여 만세운동에 앞장섰다. 점차 장꾼들까지도 이에 가담하여 읍내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 광경을 보고 감격한 어떤 조선인 경찰은 제복과 모자를 벗어던지고 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50여 명의 일본군과 기마경찰이 출동하여 야만적인 발포를 감행하면서 닥치는 대로 시위군중을 체포하였다. 이때 김성조도 붙잡혀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그는 부산형무소에서 복역 중 병으로 가출옥하였으나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61面
- 東亞日報(1920. 6.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