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양산(梁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범어사(梵魚寺) 학생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범어사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명정학교(明正學校)와 중등학교 과정의 지방학림(地方學林)이 있었는데, 황만우는 지방학림 학생이었다.
3월 17일 오후, 범어사 경내에서는 40여 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의 졸업생 송별회가 열렸다. 송별회 직후 김영규의 선창으로 40여 명의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이튿날 새벽 1시경 동래읍 복천동(福泉洞)에 있는 불교포교당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을 기습한 20여 명의 일경에 의해 붙잡혔고 나머지는 강제 해산 당하였다.
강제해산 당한 학생들은 다시 의거를 모의하고, 학생 40여 명은 3월 18일 밤, 동래읍 서문(西門) 부근에서부터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동래시장을 거쳐 남문(南門)에 이르기까지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해산하였다. 그날 밤 다시 비밀회의를 갖고 19일에는 더욱 큰 의거를 단행할 것을 결의하였다. 19일 오후 5시경, 황만우 등 10여 명의 학생들은 동래시장 남문 부근에서 시위를 전개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연이어 고창하면서 동래경찰서로 돌진하였다.
이때 그는 일경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고 여러 주도 인물들과 함께 붙잡혔으며, 4월 2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186∼189面
- 受刑人名簿表(釜山拘置所)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63·264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