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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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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白信永
이명 白信愛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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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 1919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에 가입 동회 결사장(決死長)

○ 1919. 11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 (渚) 간부(幹部)와 함께 피체

○ 1920. 6 대구지법(大邱地法)에서 제령위반, 출판법 위반으로 일년 언도

○ 1921. 5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형확정, 1921. 4 서대문옥(西大門獄)에 투옥

대구지법판결문(大邱地法判決文) 등본(謄本) 1920년 6월 29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 1920년 형공(形控) 제477(號)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 1921년 형상(形上) 제 15(號)

삼일운동비사(三一運動秘史) P. 845

항일순국의열사전(抗日殉國義烈士傳) P. 65

한국독립운동사(韓國獨立運動史) P. 163

동아일보(東亞日報) 1920. 6. 30, 1922.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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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부산(釜山) 사람이다.

기독교 전도사로 있던 백신영은 1919년 비밀결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1919년 3∼4월 오현주(吳玄洲)·오현관(吳玄觀)·이정숙(李貞淑) 등이 주도·조직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최숙자(崔淑子)·김원경(金元慶)·김희열(金熙烈)·김희옥(金熙玉) 등이 중심이 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가 동년 6월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총무 이병철(李秉澈)의 주선으로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동회는 이후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하여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동회는 동년 9월 김마리아(金瑪利亞)·황애시덕(黃愛施德)을 중심으로 결사부(決死部)와 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고 항일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조직을 전환하였는데 백신영은 결사대장으로 선임되어 활약하였다.

동회는 본부와 지부를 통해 임시정부 국내 연통부(聯通府)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활동을 대행하였다. 또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힘써 6천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백신영을 비롯한 동지들은 1919년 11월 일경에 붙잡혀 백신영은 1920년 12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병을 얻어 보석되었다.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20. 6. 29 대구지방법원)
  • 기려수필 270면
  • 박은식전서(상) 628·629면
  • 고등경찰요사 192·19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63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6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45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8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408·429·430·432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백신영 - 경남 밀양(密陽)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사건
본문
1889년 7월 8일 경상남도 밀양(密陽)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16세에 혼인하였으나, 불과 몇 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다. 1907년 서울로 올라와 정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다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1917년 졸업하였다.부산에서 기독교 전도사로 있던 1919년 2월,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당수 서병호(徐丙浩)와 그의 부인 김순애(金淳愛)가 국내 정세를 살피기 위해 부산에 도착했을 때, 이들과 함께 만세운동 계획과 신한청년당의 한국 해외 선전운동의 합류를 모의하고 한국대표 파견 경비 조달 문제를 의논하였다.같은 해 7월 비밀결사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단체는 1919년 3·4월 오현주 등이 주도하여 조직한 혈성단애국부인회(血誠團愛國婦人會)와 최숙자(崔淑子)·김원경(金元慶) 등이 중심이 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大朝鮮獨立愛國婦人會)가 같은 해 6월 대한민국청년외교단(大韓民國靑年外交團) 총무 이병철(李秉徹)의 주선으로 통합하여 결성되었다. 이후 기독교회·학교·병원 등을 이용하여 조직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회원들의 회비와 수예품 판매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수합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음)7월 부산 지역을 통괄하는 부산지부장에 선임되어 회비를 납부하고 조직 확대에 힘썼다.그런데 오현주(吳玄洲) 등 지도부의 독립 성취에 대한 자신감 상실로 인하여 점차 활동이 침체되어갔다. 이 무렵 3·1운동의 여성계 지도자로 수감되었던 김마리아(金瑪利亞)와 황애시덕(黃愛施德, 이명 : 黃愛德)이 풀려나 부진상태에 빠져있던 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하였다. 즉, 1919년 10월 19일 김마리아와 황애시덕의 출감을 위로·축하하는 다과회 모임을 명분으로 이정숙(李貞淑)·장선희(張善禧)·김영순(金英順)·이혜경(李惠卿) 등과 함께 정신여학교 김마리아의 숙소에 여성계를 대표하여 참석하였다.오랜 회의 끝에 대한민국애국부인회(혹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본부)의 조직과 임원을 개편하였다. 조직은 결사부(決死部)·적십자부(赤十字部)를 신설하는 등 항일독립전쟁에 대비한 체제로 전환하였다. 임원은 회장에 김마리아, 부회장 이혜경, 총무 겸 편집원 황애시덕, 적십자 부장 이정숙·윤진수(尹進遂) 등으로 결정하였는데, 이때 가장 핵심조직인 결사부장을 맡았다. 특히 결사부는 일제에 항거하여 직접적 투쟁이 있을 경우 제1선에 나설 전위부대로 편성되었다.애국부인회는 대한민국청년외교단과 함께 임시정부 국내 연통부(聯通府)의 역할을 대행하였고, 본부와 지부를 통해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대한총지부(大韓總支部)의 활동을 수행하였으며, 독립운동자금 모집에도 힘써 6천 원의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그러던 중 오현주의 배신으로 조직이 탄로나 1919년 11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대구경찰서로 압송되었다. 1920년 6월 2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자,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0년 12월 2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수감되어 일제의 악독한 고문으로 생사를 헤매다가 1920년 5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병이 회복되자 다시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어 1922년 4월 가출옥으로 풀려났다.1922년부터 6년간 강경교회의 전도사로 파견되어 활동하다가 강릉교회를 거쳐 1927년부터 1933년까지 서울의 체부동교회에서 시무하였다. 이후 경성 성서학원의 여자부 사감으로 10년간 봉직하였다. 1934년 9월 성결교단의 전국연합회부인회를 조직하고 초대회장이 되었고, 이후 해산될 때까지 계속하여 회장직을 맡았다. 이때 여성전문 기관지 「기쁜소식」을 발간하였다. 1938년 8월 친일파 윤치호 등이 주최한 기독교 애국좌담회에 성결교회 대표의 일원으로 참석하기도 하였다.광복 이후에도 서울에서 활동하였는데, 6.25전쟁 발발 이후 피난길에 나서다 결국 1950년 9월 22일 사망하였다. 전쟁 중에 가매장하였던 시신은 1954년 미아리공동묘지에 이장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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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출판법위반 징역 1년 대구지방법원 1920-06-29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출판법위반 공소 기각 대구복심법원 1920-12-27 국가기록원
3 판결문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출판법위반 상고 기각 고등법원형사부 1921-02-12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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