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경상북도 영천(永川) 출신이다.
1907년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고 이때 조·일 양국간에 교환된 비밀각서에 의하여 8월 1일을 기해 한국군이 해산되자 거의하여 산청군 덕산(德山)의 의병장 박동의(朴東儀) 의병부대의 부장(副將)이 되어 경상도 전역에 걸쳐서 의병운동을 하였다.
1908년 8월 18일 그의 향도관(響導官)인 서병희(徐炳熙)와 함께 의병 18명을 거느리고 산청군 두량곡(斗量谷)에서 일군수비대와 교전하여 적군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전과를 올렸다.
1909년에는 산청군 덕산에서 서병희와 함께 부하 11명을 거느리고 함안군 산외면 방목동(山外面 放牧洞)에 사는 일본인 집을 습격하여 소각하였다.
그후 그의 부하로 활약하였던 서병희는 독립하여 스스로 의진을 이끄는 의병장이 되어 경상도 일원에서 계속 활약하다가 1909년 10월 11일 구마산주재소 일경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이학로는 1910년 이후까지 지리산(智異山), 가야산(伽倻山) 등에서 계속 항전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하나 그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537·610·611·61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10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