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전국 도처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윤영복(尹永福)·오용간(吳用干)과 함께 덕성교회에 모여 거사를 계획하고 3월 22일 영일군 청하면(淸河面) 덕성리(德城里) 시장에 모인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일군 헌병의 발포 사격에도 굴하지 않고 시위행진하다가 붙잡혔다.
이해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20년 10월 3일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40·441면
- 제적등본
- 판결문(1919. 4. 28. 대구지방법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