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1919년 3월 31일 이희갑(李喜甲)·한태억(韓泰億)·이강렴(李康濂)과 함께 4월 1일의 신니면(薪尼面) 용원(龍院) 장날을 기하여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거사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외치기 위하여 선언서 7통과 태극기 9개를 만들었다.
4월 1일 신니면 용원장(龍院場)에서 500여명의 군중을 모아놓고, 이미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운동을 앞장서서 주도하였다. 그는 당시 용명서당(龍明書堂) 학생으로서 서당학생을 동원하려다가 일본인 교사로부터 제지를 받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어, 그해 6월 1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09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