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1940년 11월에 일제는 소위 「전력증강 국방경기대회」라는 명목으로 경남 전 남녀 중등학교 학도들을 참가시킨 가운데 부산공설운동장에서 경기대회를 열었는데 이때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던 동래중학교가 노골적인 일인의 편파적인 판정으로 우승을 못하게 되고 대신 일인이 주로 다니던 부산중학교가 우승을 하게 되었다.
이에 분개한 동래중학교 학생들이 부산거리에서 시위하고 일인 심판관들을 응징한 일이 있었는데 이를 내대사건(乃台事件)이라고 불렀다. 그는 동래중학교 학생으로서 이에 참가 활동하다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그후 그는 동교 1년 후배인 양중모(梁仲模)·김일규(金一圭)·김진훈(金鎭焄) 등과 함께 은사 허 현(許鉉)의 지도를 받아 독서회를 조직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41년 겨울에는 회원들과 함께 김일규의 집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서약하고, 독서회를 강화하여 조선독립당(朝鮮獨立黨)으로 개편하였다.
1942년 봄에는 그의 집에서 2차회합을 갖고 강령을 정하는 한편 항일투쟁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세우며 본격적인 활동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때 그는 행동반으로서 세포조직과 국내정세 조사 및 일군기밀탐지 등의 일을 맡았다.
그후 당원들은 여러차례 비밀회합을 거듭하면서 행동방략을 협의하다가, 1943년 졸업과 동시에 실제행동을 개시하였으며, 당원간의 연락은 일경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암호를 취하도록 하였다.
1944년 8월 1일에 동당원들은 양중모의 집에 모여 그 동안의 활동을 정리, 분석하고 군사기밀 탐지·일군 탄약고 폭파·군용열차 통과시 구포(龜浦)다리 폭파 등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만약 거사가 실패할 경우에는 일군에 입대한 후 연합군 진영으로 탈출하여 중국에서 다시 만난다는 대비책도 세워 놓았다.
한편 조선독립당은 항일결사 자일회(紫一會)·순국당(殉國黨) 등과도 연락을 통하면서 항일투쟁을 광범위하게 전개하려 했다.
특히 순국당은 1944년 5월 결성때부터 조선독립당원 이관수(李觀洙)가 그 조직을 지도하였기 때문에 조선독립당과 행동내용, 조직 등이 거의 같았을 뿐 아니라 조선독립당의 세포당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전, 1944년 7월에 순국당의 조직이 일경에 탄로가 나게 되어 동년 8월에 조선독립당의 조직도 발각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그도 당원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미결수로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부산교도소장발행 수감자명부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81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