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1928년 손기업(孫基業)·이상일(李尙逸) 등이 북경(北京)에서 중국 각처에 흩어져있는 혁명동지들을 규합하여 한국혁명당총연맹(韓國革命黨總聯盟)을 조직하였는데 여기에 가담하였다.
1932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일본의 중국침략이 노골화되자 중국의 대일감정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이에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세계대전이 일어나 일본을 패망시키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고, 그 방안으로 열강의 조계(租界)가 많이 모여있는 천진(天津)에서 일본의 조계를 점령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우선 만주 전권대사(全權大使)인 무등신의(武藤信義)를 주살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에 중국 구국군(救國軍)과 연락하여 장학량(張學良)의 협조로 일시에 한 개로 백여명을 폭사시킬 수 있는 강력한 구갑형(龜甲形) 폭탄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거사자금 7천원을 만들어 그는 동지 이창용(李昌用)·손사봉(孫四奉)과 함께 폭탄 4개와 권총 3정을 가지고 만주로 가서 무등대장의 뒤를 따라 장춘(長春)·봉천(奉天) 등지를 전전하며 그를 주살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장춘 중앙여관에서 일경에게 탐지되어 체포되고 말았다. 이에 장학량은 이들을 탈환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였으나 일제의 관동군사령부에 탐지되어 성공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와 이창용·손사봉의 3인은 1933년 5월 27일 장춘의 일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그는 심한 고문의 여독으로 동년 10월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64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47면
- 동아일보(1933. 1. 21, 1. 26, 5. 29)
- 무장독립운동비사 18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