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경주(慶州) 사람이다.
1927년 2∼3월경 서울에서 사립고학당(私立苦學堂) 학생인 이학종(李學鍾)·정관진(鄭寬鎭)·김태래(金泰來)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선학생혁명당(朝鮮學生革命黨)을 조직하였다.
조선학생혁명당은 항일운동과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조직부·재무부·정치문화부의 부서를 갖추고 동지규합에 힘썼으며 1929년 3월경 조선학생전위동맹(朝鮮學生前衛同盟)으로 개칭한후 고학당·중앙고보(中央高普)·중동학교(中東學校)에 세포단체로 독서회(讀書會)를 조직·운영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들은 동년 12월 동조시위를 펴기로 하고 항일격문을 인쇄하여 사회단체와 신문사·학교 등에 배포하였다.
한편 그는 1929년 5월 서울에서 차재정(車載貞)·심원섭(沈遠燮)·황대용(黃大用)·부병준(夫丙準) 등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조선공산청년회(朝鮮共産靑年會)를 결성하였다는 혐의로 일경에 붙잡혔으나 면소되었다.
또한 1929년 여름 신간회(新幹會) 대구지회의 조직위원으로 선임되어 경상북도 일대를 중심으로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간의 항일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신간회가 해소된 후 그는 1931∼1936년간 경북농민조합준비위원회(慶北農民組合準備委員會)와 독서회 등을 조직하여 경주지방을 중심으로 소작쟁의와 일제 착취기관 철폐, 이민정책 반대 등 항일활동을 계속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36년 10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6. 10. 31 대구복심법원)
- 범죄인명부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196·201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