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북도 영동(永同)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양산면(陽山面) 가곡리(柯谷里) 인천 이씨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당시 영동에서 무주(茂朱)에 이르는 도로공사 부역에 동원된 많은 군중과 합세하여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군중과 함께 학산면(鶴山面) 경찰주재소로 몰려가서, 돌을 던져 기물을 파괴하고 구속된 애국인사를 석방시켰다. 그리고 시위군중의 위세에 눌린 일본경찰까지도 태극기를 들고 나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일본 경찰이 증원되어 탄압이 가중되므로 시위군중이 부득이 해산될 때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10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1919. 10. 13 고등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9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