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6·10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중동학교 특과 3학년 재학중인 1926년 5월 23일에 동지 이동환(李東煥) 등과 함께 서울시내 각 학교 학생 50여명을 성북동 삼선호(三仙湖)에 모이게 한뒤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인 목정(木町)을 습격하고, 식민통치의 상징인 총독부를 때려부수자는 제의를 하였다.
다음날, 그는 통동(通洞) 자신의 집에서 이동환·박용규(朴龍圭)·황정환(黃廷煥)·곽재형(郭載炯) 등과 만나 목정 습격에 대한 문제를 토의하였는데, 이때 그와같은 습격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판단하고 융희황제 인산일인 6월 10일에 격문을 뿌리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5월 29일에 김재문의 집에 모인 동지들은 격문을 기초하고, 등사판을 빌어서 약 5천매의 격문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인쇄된 격문을 각 1천매씩 나누어 갖고, 국장당일의 행렬 속에서 오전 8시 30분을 기하여 살포하는 동시에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기로 하였다.
6월 10일, 그는 황정환과 함께 동대문밖 숭인동에서 국장행렬의 통과를 기다리다가 봉송(奉送)하는 군중 속에서 격문을 살포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일로 현장에서 일경에 붙잡혀 곧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붙잡힌 후 그는 6·10만세운동 학생주동자 10명과 함께 1926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았으나 1927년 4월 1일에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6. 11. 17 경성지방법원)
- 기려수필 377·380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8권 172·180·307·54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57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80·223·980·1484∼1494면
- 판결문(1927. 4. 1 경성복심법원)
- 동아일보(1926. 6. 15, 6. 16, 11. 18)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356·357·358·366·36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