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전북 정읍(井邑) 사람이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 지원활동을 폈다.
그는 윤 철(尹喆)·이태훈(李泰勳) 등의 동지들과 함께 1919년 10월 임시정부요원 조한국의 지시를 받고 비밀결사 구국단(救國團)을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활동을 폈다.
이들은 동년 11월 유학규(柳學圭)를 동지로 포섭한 후 정읍군 거주 유만규(柳滿圭)로부터 세차례에 걸쳐 5천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조한국에게 교부하였다.
1920년 8월 임시정부 요원 고일정(高一政)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의 권유를 받은 이들은 동년 9월 경상도·충청도·전라북도 등의 자산가들을 조사한 후 조석환(曺奭煥)·손병식(孫炳植)에게서 각각 천원씩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동년 11월 고일정으로부터 전국 13도에 선정사(宣政使)와 군(郡)·면(面)에 관장(管長)이란 행정기관을 설치할 것을 위임받은 구국단은 규칙서·사령서·군자금 납입명령서 등을 인수하여 최종응(崔鍾應)을 경북선정사, 유학규를 정읍군 관장, 유만규를 흥덕군(興德郡) 관장으로 임명하고 1921년 2월 경북 칠곡군(漆谷郡)거주 윤병돈(尹炳敦)을 비롯한 십여명의 자산가에게 군자금 납입명령서를 송부하여 윤병돈에게 3백원의 군자금을 수령하였다.
동단은 또한 동년 3월 어대선(漁大善)으로부터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李始榮)명의의 조선독립운동비 모집의뢰서, 독립공채 등을 인수받아 군자금 모집활동을 펴던 중 그를 비롯한 동지들은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21. 3. 20 경성지방법원)
- 동아일보(1921. 12. 20, 12. 21, 1922. 3. 15, 3. 16, 3.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