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남 남포(藍浦) 출신으로 1908년 2월부터 의병 30명을 거느린 의병장으로 충
남 남포, 서산(瑞山)·태안(泰安) 등지에서 일본인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
였다.1907년 일제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강제하여 대한제국의 내정을 장악한
후 대한제국의 군대인 진위대(鎭衛隊)와 시위대(侍衛隊)를 강제로 해산하였다.
이에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해산군인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써 국권회
복을 위한 의병항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충남지역에서는 을사늑약 이후 의병 활동이 꾸준히 이어졌다. 1907년 8월 경
기도 죽산에서 의병을 일으킨 당진 출신의 정주원(鄭周源) 의병부대와 경기도
수원 출신의 홍원식(洪元植) 의병부대가 당진의병의 추축을 이루었다. 정주원은
경기도 남부지역과 충남 서산, 당진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1908년 7월 해미에서
체포되었고, 홍원식은 당진군 소난지도(小蘭芝島)를 근거지로 활동하다가 1908
년 3월 홍성경찰서 순사대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정주원의
휘하에서 활동하던 당진 출신의 최종성은 당진, 서산, 해미 등지에서 1909년까
지 활동하였다.
장석홍은 1908년 2월 의병 30명을 거느린 의병장으로 충남 남포, 서산, 덕
산, 태안 등지에서 일본인을 처단할 목적으로 활동했다. 장석홍 의병부대는 분
대를 나뉘어 해안선에 상륙하여 연안의 각처 부락을 누비며 활동하였다.
체포된 장석홍은 1908년 9월 23일 소위 내란죄(內亂罪)로 기소되어 공주지방
재판소에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1908. 9.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집 52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1권 535면
- 제목없음(1908. 8. 10)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