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이장준은 후기의병기인 1908년부터 의병에 참여하여 충청남도 임천군(林川郡)·한산군(韓山郡) 각지의 순사주재소를 습격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1908년 초 조농운(趙弄云)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임천·한산·남포(藍浦)·비인(庇仁) 각지를 다니며 의병항쟁을 하였고, 동년 음력 2월 8일 130여 명의 의병과 서천군(舒川郡) 각 마을을 다니다가 우산리(牛山里)에서 일본군과 만나 교전하였다. 그리고 음력 4월 13일에는 한산순사주재소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그 후 음력 9월 노백인(盧伯仁) 의병장의 의병부대에 들어가 부장(副將)을 맡아 한산군내 각지에서 일본 헌병과 교전하였고, 음력 10월에는 임천군 입포(笠浦)에서 홍산재무서(鴻山財務署) 송주사(宋主事)의 징수 세금을 탈취하여 군자금으로 사용하였다. 11월 이후 노백인 의병장이 전라북도로 피신하자 이장준은 의병장을 이어받아 30~4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1909년 음력 2월 이내에 임천군 군용동(郡用洞)·한산군 동상면(東上面) 나교(羅橋)·임천군 고죽동(高竹洞) 등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고 밀정을 처단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었다.
이장준은 1906년 6월 21일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폭동·강도·고살죄(故殺罪)’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재판소:1909. 6. 21)
- 통감부문서(統監府文書)(국사편찬위원회, 1999) 제6집 218면
- 폭도(暴徒)에 관한 편책(編冊)(함경남도 경찰부장:1909. 3. 16)
- 폭도에 관한 편책(충청남도 경찰부장:1909. 5. 12)
- 폭도에 관한 편책(충청남도 경찰부장:1909. 6. 21)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1984) 제13권 62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1985) 제14권 534~535면, 539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1권 531, 537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