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8월경 충남 (忠南) 연산군 (連山郡) 에서 황경택 (黃敬澤) 등과 함께 400여 명의 의병을 모집, 호남호서 창의대장 (湖南湖西倡義大將) 이 되어 부하들과 함께 심상희 (沈相喜) 의 부하로 투입, 그들과 함께 전북 (全北) 무주 (茂朱) 에 이르러 김동신 의진 (金東臣義陣) 에 들어가 우익장 (右翼將) 이 되어 1907년 음력 5월부터 1909년 4월까지 경기 (京畿) 죽산군 (竹山郡) , 충북 (忠北) 충주군 (忠州郡) , 전북 (全北) 무주 (茂朱) , 용담군 (龍潭郡) 등지에서 일군 (日軍) 과 교전 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0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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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6년 8월경 충남 연산(連山)에서 황경택(黃敬澤) 등과 함께 4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호남호서창의대장(湖南湖西倡義大將)에 추대되어, 심상희(沈相喜) 의병장과 함께 전북 무주(茂朱)에서 활동하던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에 참여하였다.
김동신의진의 우익장(右翼將)으로 1907년 음력 5월부터 1909년 4월까지 경기도 죽산, 충북 충주, 전북 무주ㆍ용담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는 한편, 군자금과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9년 4월경 귀향하여 충남 진잠군 상남면(上南面) 신대리(新垈里) 민방식(閔昉植)의 집에서 잠복하고 있던 중, 1909년 4월 8일 대전경찰서 순사대의 포위 공격을 받고 약 30분에 걸친 교전 끝에 부하 4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1909년 4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 및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12월 24일 형 집행을 면제받고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09. 4. 28)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842면
- 獨立運動史(國史編纂委員會, 1970) 제1권 484, 535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5) 제14권 42~4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