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일언은 1907년 4월 의병장 정용기(鄭鏞基)가 다시 일어나 산남의진(山南義陣)을 결성하자 참여하여 우포장(右砲將)에 선임되었으며, 산남의진의 3대 의병장 정환직(鄭煥直)과 최세윤(崔世允) 휘하에서 도포장(都砲將)으로 활동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4월 경북 영천에서 창의한 의병부대이다. 창의장 정용기가 1906년 4월 28일 경주 우각리(牛覺里)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산남의진은 일시 활동을 중단하였다. 1907년 4월 재기한 정용기는 산남의진을 다시 결성하고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북상을 준비하던 중 1907년 10월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전사하였다. 그 뒤 동년 12월 제2대 대장 정환직마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산남의진 결성 초부터 흥해에 머물며 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던 최세윤은 1908년 2월 5일 이세기(李世紀),정순기(鄭純基) 등의 추대로 산남의진의 제3대 대장이 되었다. 최세윤은 경북 흥해 출신으로 1894년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하여 부하 300명을 거느린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한 바 있고, 1896년 안동의진의 제2대 대장 김도화(金道和)의 아장(亞將)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최세윤은 1908년 1월부터 일본군에게 체포된 7월까지 일본군의 끈질긴 토벌작전에도 불구하고 영천을 비롯하여 청송,영덕,영양,영해,경주,청도,의성 등지에서 각 지대별 유격전을 구사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山南倡義誌(1946) 하권 5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351, 389, 58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