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920년 국내진출을 결정하고 부하를 인솔하고
3. 1922년
4. 1933년
5. 1917년
6. 1919년
7. 1910년 합방후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의주(義州) 사람이다.
1917년에 남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외곽 단체인 대동향약(大東鄕約)을 조직하였다. 1919년에는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奎)·조병준(趙秉準)·전덕원(全德元)·박양섭(朴陽燮) 등 대표자 500여명과 함께 봉천성 유하현 삼원보 서구 대화사(奉天省柳河縣三源堡西溝大花斜)에 만주의 여러 독립운동 단체를 통합하여 대한독립단을 결성하고 총무부장으로 활약하였다.
대한독립단이 자체내에 노년층과 신진층의 의견 차이로 민국독립단과 기원독립단으로 나누어졌을 때에는 박장호·백삼규·전덕원·이웅해(李雄海) 등과 함께 기원독립단원에 가담하여 단군기원 또는 융희(隆熙) 연호의 사용을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두 단체간의 의견대립에도 불구하고, 조국독립을 위한 투쟁에는 서로 적극 협력하였다.
그후 1920년 10월 청산리독립전쟁 이후 일본군들이 대거 만주지역에 출병하자 대한독립군단 간부들은 국내 진입을 추진하였다.
이에 그는 이병기(李炳基)와 함께 강을 건너 의주(義州)·용천(龍川)·철산(鐵山) 지역으로 진격하였다.
1922년에는 남만지역의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모여 대한통의부를 조직하자 여기에 가담하여 독립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양기탁(梁起鐸)과 전덕원(全德元) 사이에 의견의 불화가 있자, 전덕원·오완하(吳完夏) 등과 함께 의군부(義軍府)를 조직하였다.
그는 정무총감에 임명되어 총장인 채상덕(蔡相德), 군무총감 전덕원, 재무총감 이병기(李炳基), 사령장 오석영(吳錫泳), 부관 강규묵(姜奎默)·계추강(桂秋岡), 제1중대장 박일초(朴日楚), 사한장(司翰長) 박승연(朴勝衍) 등과 함께 무장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58·252·254·264·288·292·438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2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9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246·264·40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