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영광(靈光) 사람이다.
1926년 11월 3일 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 등이 중심되어 조국의 독립과 사회과학연구를 목적으로 항일학생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한 후 광주학생들은 항일의식은 고조되고 있었는데 이때 광주사범학교에서도 교내활동이 활발하였다.
당시 광주사범에 재학중이던 그는 졸업에 즈음한 1929년 3월에 동기생 및 후배들과 함께 광주시내 중국요리점 '연빈루'에서 모임을 갖고 졸업 후의 항일운동에 관한 방도를 협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졸업 후 교직에 나아가서도 재학생들과 긴밀한 연락을 맺으며 항일운동을 계속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졸업 후 그는 보통학교 훈도로 재직하면서 광주사범 독서회 활동을 계속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 활동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1930년 10월에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9년에 향리에 백수동국민학교를 설립하였으며 광복 후 1947년에는 제5대 교장으로 후세 교육에 이바지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30. 10. 27 광주지방법원)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기려수필 39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25면
- 한국독립운동사(국사편찬위원회) 4권 2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04·491·49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65·1624∼1633·1654∼17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