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20년 8월경 미의원단 내한시 (來韓時) 그들의 목전 (目前) 에서 무장독립투쟁 (武裝獨立鬪爭) 을 전개하여 한국인의 자주성과 반일사상을 전세계 (全世界) 에 알리고자 광복군부 (光復軍府) 의 지령으로 경성 (京城) 에 특파 (特派) 되여 활동중 거사 (擧事) 3일전 (日前) 에 일경 (日警) 에 피체 (被逮) (동아일보 (東亞日報) 1920. 8. 24)
2. 1920년평북 (平北) 영변 (寧邊) 에서 경성 (京城) 에 폭탄 (爆彈) 을 비밀 (秘密) 히 보내어 조선총독부 (朝鮮總督府) 대관 (大官) 들을 살해코저 한 자 (者) 로 봉천 (奉天) 에 피체 (被逮) (동아일보 (東亞日報) 1922. 3. 3)
3.체만독립운동 (滯滿獨立運動) (동명 (東明) 3호편 (号篇) 1922.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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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20년
3.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북 영변(寧邊) 사람이다. 1919년 3·1독립운동에 참가한 후 국민회를 조직하여 평안북도 일대에 독립신문을 배포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 국내 조직인 연통제의 영변지구 책임자로 활약하였다. 1920년에는 대한광복군사령부의 지령으로 김영철(金榮喆)·김최명(金最明)·김성탁(金聖鐸) 등과 함께 동년 8월에 미국 의원단의 내한을 계기로 총독부와 일본기관을 폭파시켜 한민족의 배일사상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그래서 폭탄을 서울까지 반입하는 책임을 지고 포목상을 가장하고 무사히 운반하였으나 미국 사찰단의 내한예정일이 변경되어 거사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후 만주로 탈출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1922년 해성현(海城縣)에서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0면
- 동아일보(1920. 8. 24, 1922. 3. 3, 9. 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