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남 장성(長城) 출신으로 1908년 이석용의진(李錫庸義陣)에 참여하여 전북 익산(益山), 임피(臨陂), 변산(邊山)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석용은 전남 임실 출신으로 1907년 8월 전북 진안(鎭安)에서 거의(擧義)하여 의병대장에 추대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인이었다.
이석용은 1907년 9월 성재 기삼연(奇參衍)이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하자 종사(從事)로 참여하여 고창(高敞)에서 일본군 병참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용담(龍潭)에서는 김동신의진(金東臣義陣)과 합세하여 일본군과 접전하기도 하였다.
1908년 9월 임실전투(任實戰鬪) 이후 의병진을 해산했다. 1913년 겨울 임실에서 체포되어 1914년 1월 12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공판을 받아 1914년 4월 4일 대구형무소(大邱刑務所)에서 교수되어 순국하였다.
조성팔은 이석용의진에 소속되어 1908년 음력 12월 9일 권총 2자루를 휴대하고 지춘경(池春敬) 등과 함께 임피군 용지산(龍池山) 후동(後洞) 김씨 집에 들어가 식사를 제공받고 엽전 7냥을 갹출하는 등 임피, 익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점차 일본군의 의병 진압에 위험을 느끼고 변산 지방으로 숨어들어갔다가, 다시 위험을 느끼고 1909년 5월 임피로 이동하여 북일면(北一面) 중흥리(中興里)에서 양민을 가장하고 있던 중, 동년 6월 25일 임피주재소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그의 가택을 수색한 결과 처마 속에 숨겨 둔 인장(印章)과 격문(檄文)에 의하면 의병장 이학자(李學者)의 휘하에서 활동했다.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법원 전주지부에서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大韓每日申報(1909. 7. 6)
- 梅泉野錄(國史編纂委員會, 1955) 500면
- 受刑人名簿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全州支部:1909. 3. 5)
- 폭도 체포에 관한 건(1909. 6. 30)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7) 제14권, 649면
- 判決文(大邱控所院:1909. 5. 1)
- 判決文(大審院:1909. 5. 24)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581~582, 67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