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2755 후손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도움말
성명
한자 宋基和
이명 없음 성별 남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등록된 사진이 없습니다.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2003 훈격 애국장
1909년 20여명의 부하를 이끌고 전남(全南) 광양군(光陽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다 1909년 2월 21일 전남(全南) 광양군(光陽郡) 골암면(骨岩面) 송포리(松浦里)에서 일병(日兵)과 싸우다 전사(戰死)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09년 전남 광양(光陽)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여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1905년 11월에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뒤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군대까지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송기화는 이 같은 시기인 1909년 전남 광양군 일대에서 의병 20여 명을 이끌고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1909년 2월 21일 광양군 골암면(骨岩面) 해곡리(亥谷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광양주재소 일본인 순사 및 헌병대와 2시간 여 접전을 벌이다가 부하들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1輯 393面(暴徒에 관한 編冊 順警秘收 第72號 1909. 2. 22)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송기화 - 전남 곡성 -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안내
미확인
  • 해당 유공자는 묘소 위치 확인이 필요한 독립유공자 입니다. 더보기

감사의 글 Total 0 건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와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송기화(관리번호:12755)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