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09년 전남 광양(光陽)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기 위해 1904년 러시아와의 전쟁 도발 직후 곧바로 우리 정부를 압박하여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를 강제로 체결케 하고 1905년 11월에는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그들의 지배정책을 가속화시켰다. 더 나아가 1907년 헤이그 특사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뒤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을 체결하여 군대까지 해산함으로써 대한제국은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송기화는 이 같은 시기인 1909년 전남 광양군 일대에서 의병 20여 명을 이끌고 의병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1909년 2월 21일 광양군 골암면(骨岩面) 해곡리(亥谷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광양주재소 일본인 순사 및 헌병대와 2시간 여 접전을 벌이다가 부하들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1輯 393面(暴徒에 관한 編冊 順警秘收 第72號 1909. 2. 22)

